-
나의 새로운 한평 공간 (10/4)카테고리 없음 2018. 11. 18. 11:57
2018년 10월 부터 기존에 해오던 일을 떠나서 미국 메사추세츠에 있는 팜스쿨에서 안식년을 갖고 있다. 미국으로 농사를 배우러 온 이유 중에 하나는 기존의 공간에서 벗어나 기존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잘 쉴 수 있을거 같았다. 안식년을 가질 때 여러 사람들과 상의를 했는데, 공부를 더 하라는 사람도 있었고, 공부만은 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둘은 한결 같이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팜스쿨에 오기 전에 기존에 쓰던 이메일도 '부재중 자동응답'으로 바꾸어놓고, 페이스북은 휴면상태로 두었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페이스북, 쥐메일 어플을 삭제했다. 고민 끝에 인스타그램은 당분간 살려두기로 했으나, 카카오톡은 노트북에서는 지우고 핸드폰에만 남겨두었다. 결국 노트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쥐메일 새계정, 핸드폰에 있는 카카오톡 그리고 인스타그램만 남았다. 그리고 블로그를 개설했다. 아주 안할 자신은 없고 팜스쿨에 있는 동안은 최대한 단순하게 살아보리라.
팜스쿨은 10월 5일부터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개학을 하지만 전통적으로 학생농부들은 그 전날 오후 도착해서 스탭들과 동네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그리고 방을 배정 받는다. 나는 보스톤 근처에 사는 사촌형 집에 있다가 형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5시 즈음 팜스쿨에 도착했고 제비뽑기를 해서 3번 방을 배정 받았다. 내 방은 가로세로 3미터이니 한평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방문 옆에 노출 옷장을 만들고 그 위에 침대를 만들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도록 했다. 조촐하지만 깨끗하다. 방문이 마주보는 곳에는 가로 1미터 세로 1.5미터 정도의 창문이 있고, 사다리 옆에는 과거 학생농부가 만들어 두고간 책꽂이가 있었다. 다른 학생농부들을 모두 방을 꾸밀 팬시한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왔지만, 옷만 달랑 가지고 온 나는 방에 채울게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 횡한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예전에 읽었던 초협소주택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들은 너무 집이 작아서 집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아주 작은 것까지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가지고 있는 물건을 하나 버려야지 새로운 것을 살 수 있었다. 노트북과 핸드폰에서 어플을 지운 것처럼 나의 한평되는 새로운 공간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지금 있는 그대로 여백을 유지해야지라고 생각을 하는데......침대 위에 이불이 없다. 자기 이불을 가지고 오는거였나 보다. 그리고 천장에 붙은 등은 왜 이렇게 밝은지. 굴러다니는 편지봉투를 반창코로 붙여 전등 갓으로 만들고 있으니 로빈슨 크루소/소로우 코스프레 제대로다. 오늘은 가지고 온 옷을 몇 겹 입고 자야할 듯하다. 그런데 자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이 가파른 사라리를 타고 내려와야 하는 건가? (10/4 나무날)
덤 1: 학생농부들이 인간의 손으로 쓴 소포가 나에게 왔다고 난리다. 소포나 편지가 학생농부들에게 많이 오긴 하지만 광고나 세금용지 아니면 아마존에서 주문한 것들이어서 손글씨 소포를 보고 모두들 부러워한다. 팜스쿨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에머스트 대학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불도 없고 전등 갓도 만들어 썼다고 투덜댄 걸 기억하고 오리털 이불과 담요 그리고 예쁜 독서등을 소포로 보내줬다. 게다가 세심하게 컵볶이와 고디바 초콜렛, 그리고 미국 동북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하다는 비타민 D까지. 그 친구가 보내 준 선물 때문에 나의 새로운 공간 한평은 더 따뜻하고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