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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장음식 삼부작 (11/14)카테고리 없음 2018. 11. 16. 10:24
아침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지는 꽤 되었고 이번 주에는 첫 눈이 온다고 한다. 팜스쿨은 겨울 준비로 한창이다. 가축들을 위해 겨우내 배고프지 않게 양식을 마련해주고 따뜻하게 지내도록 헛간에 자리를 깔아주었다. 사람을 위한 준비도 비슷해서 얼마 전에는 난방용 장작을 처마 아래 차곡차곡 쌓아두었고 김치나 피클 같은 발효/저장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겨우내 먹을 저장음식을 세 가지 더 만들었다. 우선 지난주 일요일에 도축한 닭(이 닭들은 알을 낳다가 은퇴한 후 1~2년을 더 살았던 아이들이다)을 야채와 향신료를 넣고 하루 종일 끊여서 국물(broth)로 만들었다. 또 10/24에 도축한 돼지 고기 중에 등지방(back fat)과 리프 라드(leaf lard)라고 돼지 배 안쪽의 지방 덩어리를 끊여서(rendering) 돼지기름을 만들었다. 리프 라드는 얇은 막만 벗겨내면 지방이 나왔지만 등지방은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쉽지 않아 조각을 하듯이 지방 덩어리와 한참을 씨름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저장 음식은 라즈베리잼이었다. 가을에 추수한 후 소비자에게 가고 남은 라즈베리를 졸인 후에 설탕과 칼슘물 그리고 펙틴(pectin)을 넣고 잼을 만들었다. 잼을 만들 때에는 유리병을 소독하고 뚜껑과 병 모서리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끊은 물에 병을 소독하고 병집게로 들어올리고 자석으로 뚜껑을 닫는 등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다. 주로 아침에 빵과 곁들어 먹게 될 라즈베리잼을 이렇게 만들어 위와 같이 소독한 병에 담았고, 감기가 걸렸거나 뜨거운 국물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쓰게될 닭국물(broth)도 쓰기 편하게 작은 용기에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라드(lard)라고 불리는 돼지기름은 (고급)요리를 만들때 쓴다고 식힌 후에 여러 개의 나누어 병에 담았다.
고진하의 '하늘다람쥐'라는 시를 보면 다람쥐들은 늦가을에 씨앗을 땅에 묻은 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음식을 저장한 곳과 수직에 있는 구름에다 위치를 표시해 두는 바람에 나중에 그 씨앗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듬해 봄 그 씨앗들은 숲에서 나무로 무성히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팜스쿨에서는 남은 음식이든, 저장 음식이든 음식을 용기에 담아 보관할 때에는 반드시 라벨을 붙여야 한다! 우리가 먹는 것은 씨앗이 아닌데다가 스무명이 넘는 학생 농부들이 라벨을 붙이지 않고 음식을 보관할 경우 그 음식은 나무가 되기는 커녕 십중팔구는 음식물 쓰레기가 되기 쉽다. 라벨을 붙일 때에는 음식의 이름과 만든 날짜 그리고 가끔은 만든 사람의 이름도 적어 놓는다. 발효음식의 경우에는 발효가 잘되었는지 여부를 누군가가 확인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저장 음식을 만든 후에 용기에 라벨을 붙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했다. Lard 11/14/18 Chicken broth, 11/14/18 Rasberry Jam. 11/14/18 (11/14 물날)
덤1: 하늘다람쥐깊은 산을 다니다보면 한군데 소복하게 돋아난 어린 단풍나무들을 가끔씩 볼 수 있지. 다람쥐 짓이야. 늦가을 단풍씨앗들을 물어다 겨울 양식으로 저만 아는 은밀한 곳에 묻어 두는데, 기억력이 별로 좋지 못한 이 다람쥐란 녀석, 씨앗 묻어둔 곳을 표시해두기 위해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지. 드높은 파란 가을 하늘에 떠가는 구름, 단풍씨앗들을 감춘 곳과 수직의 위치에 떠 있는 구름에다가 그 위치를 표시해두는 게야. 그러나 반들거리는 다람쥐의 까만 눈과 눈 맞춘 구름은 이내 녀석의 눈빛을 망각 속으로 아득히 흘려보내고, 겨울이 다가와 먹을 것이 궁해진 이 다람쥐란 녀석, 가을에 저장해놓은 단풍씨앗을 찾으려 해도 제 눈으로 점찍어 둔 구름은 이미 흘러가버렸으니 결국 단풍씨앗을 찾지 못하고 마는데, 혹자는 이런 다람쥐를 일러 어리숙한 즘생이라 말하리. 하지만 그 어리숙함이 이듬해 봄 다람쥐가 찾지 못한 씨앗들을 싹트게 하여 여러 그루의 단풍나무를 솟아나게 하니! 금강석 보다 귀한 생명의 씨앗을 염주알 같은 눈망울에 담아 영원한 망각의 구름 위에다 소유권을 표시해두는 어리숙한 다람쥐여. 그 천진한 눈망울 속에 이미 깃들인 푸른, 푸른 잎의 단풍이여! /고진하, <우주배꼽>, 세계사시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