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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에 사촌 여동생이 살고있는 독일에 갔다가 그가 살는 동네에 있는 어느 개신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했다. 그 예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혹은 충격적인 장면)은 대표 기도였다. 기도의 내용이라기 보다는 기도를 하는 사람의 방향 말이다. 기도자는 앞에 나가 회중을 바라 보지 않고 회중을 등지고 제단(혹은 강단) 뒤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기도를 했다.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당연한 거였다. 누구를 대표해서 누구에게 기도를 하는지 생각해보면 말이다. 나는 기도의 내용보다도 이러한 상징이 더 많은 말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오늘 예배 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다니고 있는 정교회에서는 일요일 아침을 금식을 하고 예배 후에 같이 식사를 한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전에 사제가 축복 기도를 하는데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콘 옆에 서서 음식을 바라보고 기도를 했다. 기도 후에 (여기서는 mother라고 부르는데) 사제 부인이 와서 정교회에서는 음식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지 않고 아이콘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웃으면서 "네가 아이콘 옆에 서서 음식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너를 보고 기도를 하게 되므로 네가 성인saint인 줄 잘 못 알 수도 있어"라고 덧 붙인다. 그러고 보니 나만 빼 놓고 모두들 식사 기도를 할 때 아이콘을 보고 있었던 거 같다.
오래 개신교를 다녔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아이콘에 대해서 그리 거부감이 없었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면 그 신-인간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냐는 말에 나는 그냥 설득이 되었다. 태어나 한번도 성호를 그려본 적도 없는 나지만 정교회에 다니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부터 아이콘 앞에서 성호도 긋고 거기에 키스도 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이콘 옆에 서서 식탁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지는 않지만 식사 기도를 할 때마다 사제 부인의 말이 생각이 난다. 처음부터 그 사제 부인이 웃으면서 나에게 한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는데 그 말에는 아이콘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이 되었으므로 인간은 신의 성품에 참여("participaing in the very inner life of God")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태를 봐서는 나와는 거의 상관 없어 보이는 말지만 아무튼 이런 사상을 theosis라고 한다. 사제 부인이 말을 듣고 나는 묘하게 정호승의 '소년 부처'라는 시를 생각했다. 아이콘의 효용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한 것이 있나 싶다.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 부처다
누구나 일생의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2/24 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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