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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yuk my yum (10/24)

어떤바람농장 2019. 2. 12. 09:08


공동체로서의 팜스쿨


"공동체로 살았던 경험이 있나요?" 팜스쿨에 지원을 하면서 받았던 질문이다.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아...네...2년 반 동안 군대에서 있었습니다" 엉겹결에 그렇게 말했다. 1년 동안 15명의 학생들과 10여명의 스탭들이 매일 같이 일하고 세끼를 함께 먹고 한 지붕 아래서 자야하므로 팜스쿨에 들어올 사람에게 공동체 생활 경험은 중요했으리라. 

커뮤너티 라이프 미팅

팜스쿨에서는 격 주로 수요일 저녁에 '커뮤너티 라이프 미팅'을 한다. 보통 저녁 식사는 남은 음식을 먹거나 학생들이 알아서 해먹는데 이날은 스탭이 차려준다. 저녁을 먹고나면 썸모미터(thumbometer)라는 것을 하는데, 두 주 동안 팜스쿨 살이가 어땠는지 엄지 손가락(thumb)으로 표시를 하는 것이다. 엄지를 위로 올리면 100점이고 내려 갈 수록 줄어들다가 손가락 끝이 바닥을 향하게 되면 0점이다. 하나 둘 셋하면 모두가 엄지 손가락으로 만족도를 표시한다. 그 다음에는 살면서 불편한 점이나 함께 논의할 사항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두 주간 특별히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하면서 마무리 짓는다. 커뮤너티 라이프 미팅에는 저녁을 차려주고 사회를 보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스탭은 참여하지 않는다.


no yuk my yum

첫 커뮤니티 라이프 미팅에서는 팜스쿨에서 1년을 지낼 동안 함께 지킬 약속을 정했다. 오늘 나온 것 중에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1.(내 생각에는...이런 식으로) 1인칭으로 말하기
2.즐기기
3.말을 옮기기지 않기
4.의도가 없었더라도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책임을 지기
5.판단을 하지 말고 사실을 말하기
6.감사의 태도를 갖기
7.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되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히 받기
8.남이 나에게 해주기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고 남이 원하는 것을 하기(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모르면 물어보기)
등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내 냠냠에 웩하지 않기 no yuk my yum"였다.  물론 여기서 '냠냠yum'은 음식에 한정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익숙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모여 살 때(그런데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으니 결국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원칙이리라. 

마이크로 어그레션

그런데 이렇게 멋지게 약속한 대로 공동체가 돌아갔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그럴리가 없다. 공동체로 살면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 커뮤너티 라이프 미팅에서 드디어 일이 터졌다. 학생농부 한 명이 팜스쿨이 자신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aggression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마이크로 어그레션.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말인데 구글을 찾아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한 마디로 하면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의도하거나 혹은) 의도하지 않은 미묘한 차별적 행동이나 말").

everyday verbal, nonverbal, and environmental slights, snubs, or insults, whether intentional or unintentional, which communicate hostile, derogatory, or negative messages to target persons based solely upon their marginalized group membership.

타인의 친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나의 안전

마이크로 어그레션 사건 이후에 이주자로 미국에서 살게 된 내 처지에 대해도 되돌아 보게 된다. 나도 마이크로 어그레션이라고 할 만한 것을 당한 적이 있었나 짚어 봤지만 분명하지 않다. 운 좋게 모든 스탭과 농부학생이 나에게 친절하다. 그럼 된거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친절이 이주자로서 나의 취약함을 더 도드라지게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나에게 사회적인 자산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정적으로 유창하게 말을 못하고 동종의 인종적/민족적 그룹이 가까운 주변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안전은 다른 사람의 자발적인 친절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친절을 이끌어내기 위해 본래의 나와는 다르게 더 나이스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우리는 화해할 수 있을까

학생농부들 사이에 이러한 인종적인 갈등과 긴장을 지켜보면서 혼자 이렇게 묻게 된다. 과연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는 이곳에서 (공동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가 일어날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다 큰 어른들을 그러한 화해로 가게 할 수 있을까?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시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편가르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마이크로 어그레션을 당한 피해자의 편이 될 있을까? (10/24 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