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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조약돌 (11/18)
어떤바람농장
2018. 11. 19. 09:43
힘주어 부리를 다물며 끝까지 버텼지만 질끈 감은 눈은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다문 입이 아니라 체념한 눈 때문에 살려줄까 망설였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쓸데없는 고통을 더하지 않는 것 뿐이고 살점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꽉 물 수 있는 이빨 하나 없이 몸 속 주머니에 형형색색 조약돌을 굴려가며 살았던 칠면조(七面鳥)의 무력한 입안으로 날카로운 칼을 쿡 찔러 넣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두고 팜스쿨에서는 오늘 그 동안 키워왔던 칠면조를 잡았다. 아침 8시에 팜스쿨이 칠면조를 길렀던 센티널 엘름(Sentinel Elm)으로 올라가면서 지난 금요일 Fair Wind Farm에서 짐끄는 말(draft horse) 다루는 법을 가르쳐준 Jay가 한 말이 기억났다. 말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자 Jay는 답을 하면서 농장에서 늘 겪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신은 동물들이 도축되어 죽든 병들어 죽든 늘 그 죽어가는 현장에 있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죽음을 좋아하거나 죽이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과정의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칠면조 도축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너무 생경한 광경에 칠면조를 죽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하 잔임함 주의) 우선은 다른 사람이 죽이고 털을 벗긴 칠면조에서 내장을 제거하는 일 부터 시작했다. 꼬리에 있는 기름 분비선(oil gland)를 제거한 후에, 목 부분을 열어 모이주머니(crop)를 제거한다. 모이주머니는 음식물이 모래주머니(gizzard)로 들어가기 전에 머무는 곳인데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칠면조가 먹었던 음식물이 고기와 함께 소비자에게 가게 된다. 그 다음에는 엉덩이뼈 부분을 열어 모든 내장을 다 꺼내는 것이다. 내장 중에 심장과 간과 모래주머니는 남기는데 간을 떼어낼 때에는 녹색물이 담긴 담낭(gallbladder)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모래주머니를 열어보니 그 안에 모래가 아니라 색깔과 모양이 다양한 조약돌이 가득들어있다. 새는 이것을 가지고 먹은 것들을 잘게 잘랐을 것이다(위 사진). 그 다음 갈비뼈에 붙은 허파를 제거하면 된다. 처음에는 이 징그러운 것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허파를 찾아 갈비뼈를 계속 더듬다보면 조금 전까지 살아있었던 이 거대한 새의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칠면조 세 마리에서 내장을 제거하는 일을 한 뒤 용기를 내서 도축의 다른 과정도 해보기로 했다. 칼로 칠면조의 기도를 잘라 죽이고 피를 뺀 뒤에 다리와 목을 제거하고 70도 정도 되는 뜨거운 물에 넣는다. 깃털을 쉽게 뽑기 위해서다. 그리고 안에 고무 돌기가 들어있는 통에 새를 넣고 돌리면서 깃털을 제거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장을 제거한 뒤 얼음 물에 넣어 식힌다. 바늘이 달린 온도계를 가슴살에 넣어 11도(화씨 53도) 이하가 되면 비닐로 포장을 해서 냉장고에 집어넣는다(아래 사진). 앞서 남겨둔 심장, 간, 모이주머니 등은 별도로 포장을 한다. 오늘 오전 8시부터 40마리의 칠면도를 도축했는데 1시도 되기 전에 포장까지 다 끝냈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축한 칠면조를 이번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낼 사촌형에게 가져가려고 한다. (11/18 해날)
덤 1: 칠면조를 도축한 뒤 헛헛한 마음으로 센티널 엘름에서 숙소인 매기 하우스로 걸어서 돌아왔다. 갑자기 팜스쿨에 와서 한번도 먹고 싶지 않았던 인스턴트 라면이 그리워졌다. 에머스트에 갔을 때 샀던 너구리가 있으니 그거를 끊였다. 그런데 이거를 포크로 먹고 있으니 맛이 제대로 나질않는다. 먹는 둥 마는 중 하다가 마당으로 나가 노르웨이 메이플 나무 아래 떨어진 잔가지를 주워가지고 와서 주머니 칼로 깍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만들어야겠다.